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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나]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미국인들
한국인들은 우익과 좌익, 보수와 진보, 친미와 반미를 굳이 거론할 필요 없이 우리를 구출하여준 은인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쉽게 빨리 망각을 잘하는 것이 우리의 타성인지 모르지만 이것만은 마음에 오래도록 간직하여야 한다.
첫째, 트루만(Harry S. Truman) 미국 대통령이다.
6.25 남침 소식을 들은 그는 즉각 미군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이 결단으로 대한민국이 지금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공산 독재자의 침략을 받은 남의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자국의 젊은이들을 보내는 대통령의 결정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조건 없이 결단을 내렸다.
둘째,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이다.
그는 모든 관계자가 반대하는 인천상륙 작전을 결행하고 성공시켰다. 이것으로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던 유엔군과 국군은 일거에 전세를 역전시켜 북진을 개시하였다. 인천 자유공원 언덕에 서있는 맥아더 원수 동상은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준 미국의 모든 것을 설명하여 주고 있다.
셋째, 미8군 사령관 워커(Harris Walton Walker) 중장이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에 있던 미8군 병력을 신속하게 이끌고 와 낙동강 전선에서 최후의 방어에 성공하였다. 이렇게 하여 대구를 지키게 된 것이다. 1950년 12월 23일 의정부 북부의 축석령 부근에서 불행하게도 그를 태운 지프가 한국군 트럭과 충돌하여 사망했다. 향년 61세였다. 중공군의 공세를 막는데 수훈을 세운 그의 외아들 워커 대위에게 이승만 대통령이 수여하는 은성무공훈장을 전달하기 위하여 이동 중이었다고 한다. 그를 기리기 위하여 대구에 그의 동상이 세워진다고 한다. 서울 광진구 광나루 언덕에 있는 워커 힐(Walkerhill)은 워커 장군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붙인 이름이다.
넷째 애치슨(Dean G. Acheson) 미국 국무장관이다. 한국전 참전의 당위성을 우방국들에게 적극적으로 외교적인 설득을 해준 장본인이다.
다섯째 밴 프리트(James A. Van Fleet) 미8군 사령관이다.
그의 외아들은 공군조종사로 한국전에 참가하여 평양 폭격 중 산화(散花)하였다. 밴 프리트 장군은 한국군을 강병(强兵)으로 키우는데 막대한 지원을 해주었다.
이 다섯 분의 은인은 우리를 구해준 수많은 사람들 중 예시(例示)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전쟁으로 약 5만 명의 미군이 우리 땅에서 전사하였다. 이들이 모두 고마운 분들이다. 우리가 더 고마운 것은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들이 한국을 구했다고 자랑하지도 않았고, 알아달라고 한국인들에게 요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이야 말로 정말 잊을 수없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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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DISCLAIMER : Some one in Korea sent to me in memery of Korean War 625 recent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