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속회 공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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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송: 418장(새 299) 하나님 사랑은
기 도: 
성 경: 로마서 8:14-17
말 씀: 제3장 나에게서 아버지를 본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에 대하여 싫어하든 존경하든 좋아하든, 아들들은 자신들의 아버지를 닮아간다. 점점 성숙하며 아들들이 아버지가 되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 아들들의 모습 속에 자신들의 아버지가 보이며, 또한 자신들의 아버지의 모습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즉 하나님에 대한 상도 그리게 된다. 
한번 자신들이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라는 단어와 함께 연상되는 것들을 나누어 보자.  
엄격한 아버지를 둔 자녀는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를 때 하나님을 존경하면서도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로 느낀다. 반면, 친밀한 아버지를 둔 이들은 반대로 ‘하나님 아버지’라고 할 때에 하나님을 웬만한 잘못도 묵묵히 참으시고, 그 품에 안겨 투정부리고 싶은 아버지로 느끼게 된다. 이렇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 땅의 아버지들의 어깨가 무겁다. 하늘 아버지의 축소판처럼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축소판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장애물이 되곤 한다. 
이젠, 당신이 가지고 있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때에 그려지는 이미지는 어떠한가?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자녀들이 갖게 되는 데에는 아버지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머니들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준다. 강한이미지의 ‘타이거 맘’, 혹은 헬리콥터 맘‘처럼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는 강한 어머니들은 자녀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한다. 무력한 아버지로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 우리는 이 땅에서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받은 이미지 이상의 앎, 경험, 이해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이 땅에 있는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불완전한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늘 아버지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기 이전에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의 상이 무엇이었는가라는 점이다. 구약에서 전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는 무엇인가? 또한 이에 비교하여 당신이 가지고 있는 아버지를 뺀,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는 무엇인가? 
구약에서 그려지고 있는 하나님, 그리고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는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은 빈틈없고 털끝만큼도 빗나감도 허용하지 않는 분이다. 유대인들이 믿었던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분노가 부글부글 끓는데 간신히 참고 계시며 그 분노가 커지면, 마침내 폭발하여 불의 심판을 행하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분노가 가득 찬 하나님의 마음을 진정시켜드리기 위하여 정해진 대로 끊임없이 제사를 드리고 구제하고 예배를 드렸다. 만약,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 나오는 탕자와 같이, 그리고 첫째 아들과 같이 행했다면 당장 천벌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하늘의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이런 분노로 가득 차 어떻게 하면 심판할까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전해주시는 하늘의 아버지는 어떠한 분이신가? 그렇다. 사랑을 허비하는 아버지이다. 아무리 후레자식과도 같이 아버지를 대하고, 아버지를 이용만 하려고 하는 아들이라 할지라도 그 아버지는 다른 모든 것을 아들을 위해서 허비하는 아버지이다. 인간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는 분이 아니라, 그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그것도 당신의 외아들을 내어주기까지 말이다. 인간의 죄에 대하여 분노하기 보다는 아파하는 분이며, 심판하고 징계하는 분이 아니라 참고 기다리며 용서하는 분이시다. 다시 씻기시고, 회복시키고 치유하시는 분이시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더 닮아 인색하고 엄격하기 보다는 사랑을 허비하고 탕진하는 이미지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능력하고 무기력하며 사랑만을 가지고 계신 분이 아니시다. 사랑의 속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게 행하셨지만, 하늘 아버지는 전능자시요 심판자이시다. 정의로우신 분이시다. 그래서 당신의 하나뿐인 외아들까지도 다른 이들의 죄를 위임받아 죄인이 되었을 때에 심판하셨다. 십자가에 달린 외아들의 처절한 부르짖음에 외면하셨다. 다만 그 분의 사랑이 그분으로 하여금 다른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먼저 사랑으로 대하게 만드셨다. 
우리가 주기도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서 ‘아버지’라는 단어보다는 ‘아빠’라는 단어가 더 맞다. 원어적으로 아람어 ‘아바’였던 것이 헬라어를 사용하여 기술되면서 아버지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셨던 호칭 ‘아빠’처럼 우리가 그렇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부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거리감이 있고, 혹은 엄격하며 무게감이 있는 사이가 아니라 친밀한 관계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라는 초청이다. 마주했다가는 죽을 것 같은 두려운 관계가 아니라 그 품에 안길 수 있는 관계, 우리의 아빠가 되셨다는 그 신비가 이 주기도문의 첫 문장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서론에서 나누었던 것처럼, 자녀들 속에 어느덧 자연스럽게 배어있는 부모의 모습, 생각, 가치관, 말하는 것, 걸음걸이처럼 하늘의 아버지의 모습이 우리들 안에 자연스럽게 배어나오게 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 형질처럼 우리들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 있기에 우리 자신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라는 주님의 초청은 연약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DNA를 심어주고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그 신비로 살라는 초청이다. 

이 땅위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로 인하여,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 처음에는 두렵고 떨리는 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 ‘아빠’로 부르며 그 아빠되신 하나님과 매일같이 사귀며 살아감으로 하늘의 아버지를 닮아 어느덧 자연스레 우리들의 모습 속에 하나님의 모습이 나오게 될 것이다. 

  묵상과 토의문제: 
1)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과 당신의 아버지는 어떻게 다릅니까?
2)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아빠’라고 부른다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3) 하늘 아버지를 닮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요? 


* 찬 송: 347장(새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 헌 금:
* 광 고: 
*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