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송: 383장(새 29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기 도:
성 경: 히브리서 10:32-39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말 씀: 제7장 인내
“긍휼의 삶을 사는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인내하며 사는 삶이다”(149p)라고 책의 저자는 말한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긍휼과 인내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긍휼, 즉 자비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함이며, 서로 경쟁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공유하며 나누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낮아지며 겸손하여 종과도 같이 서로를 섬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처럼 그 긍휼을 닮아가며 따라가는 그의 제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처럼 하향성, 아래로 내려가며, 자신의 편안하고 익숙한 자리를 떠나 반대로 힘들고 어려운 길을 기꺼이 감내하며 나아간다. 그러나 이 길은 어려운 길이며, 또한 편하고 익숙하며, 높아지기를 원하는 우리의 본성과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러한 본성을 걷어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러한 훈련이 없다면, 긍휼의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은 있으나 금세 실패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회귀하고 만다.
그렇다면 이 훈련은 긍휼을 얻어내기 위한 가혹한 방법이나 기술인가? 일정한 단계의 가혹한 훈련을 거치면, 마치 졸업장이나, 증명서를 받듯이 긍휼을 얻어낼 수 있을까? 아니다. 긍휼은 훈련함으로써, 연구하며 관리함으로써 얻어지는 어떠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긍휼은 하나님의 선물이지, 열심히 애쓴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훈련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빛을 가리고 있던 낙엽과도 같은 덮고 있는 것을 걷어내기 위해서이다. 훈련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내야 말로 긍휼을 드러내게 하는 가장 큰 훈련이다. 인내란 단순히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치열한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서 그 와중에서 경험되는 고난을 충만히 견뎌내는 것이다. 포기하거나 대립하지 않고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참으며 같이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부끄러운 기억에 대하여 망각하기 보다는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인내를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비유는 농부의 비유이다. 봄철에 씨를 뿌리지만, 결실은 때가 되면, 즉 가을에 얻을 수 있다. 씨만 뿌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농부는 결실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한다. 잡초를 제거하고 약을 치며, 물을 조절한다. 결실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이처럼 인내란 결실할 때까지 믿음으로 지키어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4가지의 밭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 )로 ( )하는 자니라“(눅 8:15)
그렇다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결실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인내를 훈련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은 또한 자신을 따르는 자들의 삶에서 중심으로 삼아야 할 것을 인내라고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21장 16절에서 19절까지 읽고 무엇으로 우리의 영혼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는지 찾아보자. ( )
바울도 우리의 인내를 통해서 하나님의 긍휼어린 사랑을 드러낼 수 있는 살아있는 표적(Sign)이 된다고 말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 )를 ( )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 )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롬5:3-5)
우리의 인내, 오래참음, 연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 긍휼, 자비는 드러난다. 이를 확실하게 전해주는 것은 야고보를 통해서 알려주셨다. 야고보서 5장 11절을 읽어보자.
( )
그래서 긍휼하심을 쫓아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나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내를 훈련해야 하며, 이렇게 우리가 인내함을 통해서 더욱 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인내를 훈련함에 있어서 우리가 힘들어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시간이라는 것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조금함”을 들어 설명한다. 모두 다에게 정해져 있는 시간속에 조금함은 그 순간을 공허하고 무익하며 무의미한 순간으로 여겨 가능한 빨리 도피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바로 조금합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어차피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대표적인 것이 비행기가 연착되어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음에도 그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지루해 하며 어떻게 하든지 그 장소와 시간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를 조급함으로 몰아놓는 시간은 엄격하고 무자비한 객관성을 가진 시간이다. 째깍째깍 하고 흐르는 시간 속에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것 같은 조급함을 만들어 낸다. 갑자기 치열한 삶을 살아야 했던 한국인들은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빨리빨리”가 습관화되었고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러나 이 시간은 우리로 긍휼어린 함께함을 가로 막는다. 같이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로 평화를 느끼고 사랑을 경험하게 하는 시간 보다는 우리가 해야 할 일들, 바쁘게 처리해야 할 일들로 우리를 몰아붙인다. 그래서 긍휼을 이루기 위해여 함께 해야 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만든다.
인내의 훈련은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 새로운 시간에 초점을 두게 하고 집중하게 한다. 기계적인 시간(크로노스)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 삶의 진정한 의미와 기쁨을 경험하게 하는 새로운 시간, 구원의 시간(카이로스) 속에 살아가게 만든다.
크로노스: 일반적인 시간의 개념 60초, 60분, 24시간, ...
카이로스: 어느 특정한 때, 생일파티, 결혼식,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어”.
시간에 쫓겨 살기 보다는 의미속에 살 때, 시간의 흐름에 갇혀 있지 않고 오히려 초월하여 계속해서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머물 수 있게 한다. 그것을 가능케 함이 인내이다. 인내는 크로노스의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구원의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을 경험하게 만든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막1:15)라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때가 바로 카이로스이며, 인내로 채워진 그 시간이 되었을 때 주님은 오셨고, 구원하심의 은혜를 보이시고 이루셨다. 인내의 훈련을 통해서 이처럼 새로운 삶으로 가득 찬 충만의 시간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인내함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나라는 수명이 아니라, 삶의 충만함, 사랑과 은혜로 가득 채워진 삶이 진정 중요한 삶임을 깨닫게 된다.
바쁜 삶에서 조금함으로 이리 저리 움직임 속에서는 긍휼을 보이고 드러낼 수 없다. 오히려 바쁘고 힘든 삶이지만, 그 속에서 함께 함의 소중함, 같이 나누며 같이 걸어가는 기쁨을 깨닫는 것 그것은 인내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인내는 긍휼을 베푸는 한 방법으로서 우리를 긍휼의 삶으로 인도한다. 인내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데 필요한 훈련이다.
* 속원들과 함께 할 일들
1) 주일예배시간을 2시간을 늘린다면 어떠할 것 같은가(조금함에대해)?
2) 자신이 일중심의 삶을 살았는지, 아니면 사람중심의 삶을 살았는지 생각해 보고 나누어 보자.
3) 기도의 제목을 나누고 중보기도하자
* 찬 송: 525장(새 221장), 주 믿는 형제들
* 헌 금:
* 광 고:
*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